[그랑셰르] 출장진찰
"하아, 도데체……."
라헨은 자신의 진찰가방을 꺼내 이것저것 챙기면서 한숨을 연신 내쉬었다. 이유는 바로 한통의 전화 때문인 것.
전화의 내용은 동물원에서 펭귄이 아프니 와서 진찰을 봐주면 감사하겠다는 내용. 보통 강아지나 고양이정도를 주로 진찰해온 터라 살짝 당황한 라헨은 "어떻게 아픈데요?" 라고 질문을 던졌지만 그쪽에서는 "그걸 알면 내가 의사를 부르겠냐." 라고 말한 뒤 위치를 말한 후 재빨리 끊어버린 것.
'증상정도는 알아야 뭘 가져가든말든 하지!!!!!!!'
하지만 다시 전화하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일단은 '밥줄'이므로 참고 이것저것 가져가기로 했다. 덕분에 진찰가방은 꽤나 묵직했다.
"오늘은 집에있어. 금방 다녀올게."
우선은 동물원이고, 어떤 동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다가 무엇보다 진찰하다가 쥬가 어디로 새버릴지 모르기 때문에―쥬는 의외로 활동적이었다.― 두고가기로 결정하고, 가게문을 걸어잠궜다.
"이녀석입니다."
"흐응―."
라헨은 펭귄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일단 외상은― 아?
"며칠 전에 싸우기라도 했나보죠?"
"네?"
날개 안쪽에 상처가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처가 약간 있네요. 뭐 이것때문에 아픈건 아니겠지만."
한곳 체크.
라헨은 청진기를 꺼내어 펭귄의 배에 대보았다. 맥박수도 약간 빠르지만 이정도면 정상, 그러면…
"혹시 오늘 밥 안먹던가요?"
"네? 아, 네. 아무리 가까이 같다줘도 도당췌 먹지를 않더군요."
"어제 양치는 해주셨죠?"
"네."
'그럼 입냄새를 맡아볼까나….'
라헨이 펭귄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덕분에 펭귄의 몸이 이리저리 발버둥쳐서 고정하느라 힘을 좀 더 썼지만.
'윽, 지독해…….'
굳이 비유하자면 썩은계란을 먹은듯한 냄새였다. 배탈인가?
"배탈인 것 같네요. 우선 상처 치료하고, 약 먹이고 푹 재우면 괜찮을거에요. 성질이 급한녀석 같은데, 먹이를 지금보다 더 작게 잘라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네, 그렇도록 하죠."
"자, 그럼 이녀석의 상처를 치료하는게 먼저일텐데…"
라헨은 다짜고짜 날개를 들어서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때문에 펭귄이 놀랐나보다. 꽥-하는 소리를 지르더니 한걸음 물러나서 라헨의 손을 부리로 살짝 쪼았다.
"아얏!"
부리가 뭉툭한 녀석이었다지만 부리는 부리인지, 상처가 나서 핏방울이 살짝 맺혔다.
"으음, 착하지? 아프게하려고 하는게 아니야."
라헨의 손이 다가가자 다시한번 한걸음 물러서더니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라헨이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펭귄이 싫어질 것 같아―."
지금은 루체른의 어느 동물원에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이다. 그리고 그 동물원 안에 어느 동물방. 그 안에 서있는 남성 라헨 테일러. 올해 21살인 젊디 젊은 수위사 겸 동물가게 주인장. 그리고 라헨의 맞은편에는 왠 펭귄녀석이 서있다. 그 아래 흩어져있는 붕대는 옵션. 지금 이 둘의 세계3차대전이 진행중이다.
"착하지……."
라헨은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펭귄에게 다시한번 다가갔다. 하지만 펭귄은 너따위가 날 잡을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 처럼 날개로 라헨의 손을 치고 몇걸음 물러섰다.
"제발……."
억지웃음을 가장하고 한 번 더 다가가 보았다. 이번엔 한술 더 떠서 박치기.
"그러니까 좀……."
이게 마지막, 다시 한 번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가만히 있기는 커녕 마치 불이라도 뿜을 기새로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었다.
이젠 못참아.
"아, 끝나셨나요?"
동물방에서 나오는 라헨을 사육사가 목격한 모양이다. 라헨은 밝게 미소지어 보였다.
"네, 말을 안들어서 살짝 애를먹긴 했지만―. 상처도 치료해주고, 약도 먹었으니깐 내일쯤엔 아주 건강할거에요. 아, 약을 먹어서 그런지 방금 잠들었답니다."
"네, 얼마죠?"
"20루이에요."
"여기……. 아, 그 손은…"
사육사는 라헨의 빨갛게 부어오른 오른손등을 보더니 살짝 놀라는 듯 하였다.
"아, 이거―― 별거 아닙니다."
돈을 받고 살짝 인사해보인 후, 발걸음을 출구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라헨의 발소리만이 날 뿐이었다.
*
잠을 자면 잘수록 피곤해지는 기분이다......